이탈리아 콜라투라 디 알리치, 멸치 층을 통과한 호박빛 조미료

짙은 갈색 병에 담긴 액체를 처음 보면 간장이나 오래된 식초처럼 보인다. 뚜껑을 열면 짠 바다 냄새와 숙성한 생선의 향이 올라온다. 이탈리아 남부 체타라에서 만드는 콜라투라 디 알리치다. 콜라투라는 멸치를 갈아 만든 소스가 아니다. 멸치와 소금을 나무통에 층층이 쌓아 숙성한 뒤, 통 안에서 생긴 액체를 아래로 흘려 받아 만든다. 완성품에는 생선살이 남지 않는다. 붉은빛이 감도는 맑은 … 더 읽기

스리랑카 미키리, 물소 젖이 붉은 질그릇에서 굳는 시간

스리랑카의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작은 가게 앞에 붉은 질그릇이 층층이 쌓인 모습을 볼 수 있다. 뚜껑 대신 종이나 비닐을 씌운 그릇 안에는 물소 젖으로 만든 발효유인 미키리가 담겨 있다. 미키리는 숟가락을 기울여도 쉽게 흐르지 않을 만큼 단단하다. 표면은 매끈하고 속은 희고 촉촉하다. 여기에 야자나무 수액을 졸여 만든 키툴 시럽을 뿌리면 새콤한 맛 뒤로 진한 단맛이 … 더 읽기

이집트 미시 치즈, 오래된 치즈를 항아리에 이어 담는 방식

치즈는 숙성을 마치면 항아리에서 꺼내 먹는 것이 보통이다. 이집트의 미시(Mish)는 이 순서를 조금 다르게 따른다. 숙성된 치즈를 모두 비워 내지 않고 일부를 남겨 다음에 넣는 치즈의 발효를 돕는다. 한 번의 제조가 끝나는 대신 지난 항아리의 맛이 다음 항아리로 이어진다. 미시는 우유를 바로 발효해 만드는 부드러운 치즈가 아니다. 먼저 물기를 뺀 카리시 치즈를 준비하고, 소금과 유청 … 더 읽기

스위스 에멘탈 치즈의 구멍, 발효 가스와 건초 입자가 만든 무늬

에멘탈 치즈를 자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맛이 아니라 구멍이다. 매끈한 치즈 속에 크고 둥근 공간이 띄엄띄엄 자리 잡고 있다. 만화에서는 생쥐가 갉아 먹은 흔적으로 그려지지만, 실제 치즈 공방에서는 구멍의 크기와 모양, 분포까지 품질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스위스 에멘탈 치즈의 구멍은 숙성 중 만들어진 이산화탄소가 빠져나가지 못하고 치즈 안에 모이면서 생긴다. 여기까지만 보면 가스방울이 … 더 읽기

윈난 보이차의 두 갈래, 생차와 숙차를 가르는 퇴적 발효

단단하게 눌린 보이차에 차칼을 넣으면 얇은 찻잎이 결을 따라 떨어진다. 떼어 낸 찻잎에 뜨거운 물을 부으면 처음에는 나무와 마른 흙을 떠올리게 하는 향이 나고, 몇 차례 더 우리면 은근한 단맛과 묵직한 향이 드러난다. 특히 숙차에서는 맑은 녹색이나 노란색과 거리가 먼 짙은 적갈색 찻물이 나온다. 윈난 보이차(Pu’er tea)는 흔히 오래 묵힐수록 좋은 차로 소개된다. 하지만 시간만으로 … 더 읽기

벨기에 람빅, 겨울밤의 쿨십에서 시작되는 자연 발효

겨울밤이 되면 브뤼셀의 일부 양조장은 지붕 아래 창문을 연다. 막 끓인 맥즙을 넓고 얕은 냉각조에 붓고 차가운 공기 속에서 밤새 식히기 위해서다. 외부 미생물을 차단하려는 일반적인 식품 제조 현장과는 정반대의 풍경이다. 벨기에 람빅(Lambic)은 별도로 배양한 효모를 넣어 발효를 시작하지 않는다. 열린 냉각조와 양조장 설비, 오래 사용한 나무통에 자리 잡은 미생물이 맥즙에 들어가면서 긴 발효가 시작된다. … 더 읽기

스웨덴 수르스트뢰밍, 통조림 안에서 이어지는 발효

스웨덴 수르스트뢰밍(Surströmming)은 봄에 잡은 발트해 청어를 소금물에 넣어 발효한 음식이다. 강한 냄새로 먼저 알려졌지만, 북부 스웨덴에서는 늦여름이 오면 빵과 감자, 양파를 곁들여 함께 먹는 계절 음식에 가깝다. 이 음식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통조림이 단순한 포장 용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청어를 캔에 담은 뒤에도 발효가 계속되며, 그 과정에서 생긴 가스가 캔의 위아래를 볼록하게 만든다. 봄철 어획에서 시작한 시간이 … 더 읽기

모로코 스멘, 소금과 시간이 버터에 남긴 깊은 향

모로코 스멘은 버터에 소금을 넣고 수개월 동안 숙성해 만드는 전통 발효 식품이다. 갓 만든 버터처럼 부드럽고 고소한 맛을 기대하면 첫 향부터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오래 묵힌 치즈를 떠올리게 하는 강한 향과 짠맛이 특징이기 때문이다. 스멘은 빵에 넉넉하게 바르는 일반 버터와 사용 방법도 다르다. 쿠스쿠스나 타진, 수프처럼 여러 재료가 들어가는 음식에 조금 넣어 전체적인 향을 … 더 읽기

루마니아 보르슈, 밀기울로 완성한 전통 수프의 신맛

루마니아 보르슈는 밀기울을 발효해 만든 새콤한 액체다. 보르슈라는 이름 때문에 붉은 비트 수프를 떠올리기 쉽지만, 루마니아에서는 수프에 신맛을 더하는 발효액을 가리킬 때가 많다. 완성된 보르슈는 뿌연 연노란색을 띤다. 밀기울과 따뜻한 물, 이전 발효에서 남긴 후슈테를 섞어 며칠 동안 발효한 뒤 액체만 걸러 사용한다. 루마니아 가정에서는 이 발효액을 고기와 채소로 끓인 수프에 넣어 산뜻한 맛을 더해 … 더 읽기

고추보다 먼저 콩을 띄우는 중국 피셴 두반장

마파두부를 먹다 보면 붉은 기름 사이로 잘게 부서진 콩 조각이 보일 때가 있다. 고춧가루나 고추기름의 흔적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이미 발효를 거친 콩이 들어 있다. 쓰촨 요리의 기본 조미료인 피셴 두반장이다. 피셴 두반장은 잠두라고도 부르는 넓은콩과 고추, 소금 등을 발효해 만든다. 처음부터 모든 재료를 한 항아리에 넣는 방식은 아니다. 콩을 먼저 띄워 발효의 바탕을 만들고, … 더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