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프라혹은 톤레사프에서 한철에 잡힌 물고기를 오래 보관하기 위해 만든 발효 생선 페이스트이다. 톤레사프의 물고기는 특정 계절에 한꺼번에 몰린다. 프라혹은 이 짧은 풍요를 다음 계절까지 이어가기 위해 만들어진 캄보디아의 저장 음식이다. 이번 글에서는 프라혹의 제조 과정과 식탁에서의 쓰임에 대해 살펴보자.
캄보디아의 재래시장에서 프라혹을 파는 가게를 보면 큰 통마다 회갈색 생선 페이스트가 담겨 있다. 손님은 집에서 먹을 만큼 덜어 간다. 뚜껑을 여는 순간 짠 생선 냄새가 강하게 올라오기 때문에 처음 접한 사람에게는 다소 낯설 수 있다.
하지만 냄새만으로 프라혹을 설명하면 이 음식이 왜 캄보디아 식탁에 남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프라혹의 시작점은 주방보다 캄보디아 한가운데 있는 톤레사프 호수에 가깝다.

바탐방 시장에서 판매되는 프라혹
- 출처: Cristina Bejarano, Wikimedia Commons
- 라이선스: CC BY 2.0
우기와 건기에 크기가 달라지는 톤레사프
톤레사프는 일 년 내내 같은 모습으로 머무는 호수가 아니다. 우기가 시작되고 메콩강의 수위가 높아지면 톤레사프강의 흐름이 거꾸로 바뀐다. 강물이 호수로 들어오면서 호수와 주변 범람원의 면적이 크게 넓어진다.
물이 들어찬 숲과 들판은 어린 물고기가 자라기에 좋은 환경이 된다. 우기가 끝나면 반대 상황이 벌어진다. 호수의 물이 다시 메콩강 쪽으로 빠지고, 넓게 흩어져 있던 물고기도 좁아진 물길로 몰린다.
이때가 톤레사프 일대의 중요한 어획기다. 특히 12월부터 이듬해 초까지는 짧은 기간에 많은 물고기가 잡힌다. 지금도 캄보디아에서는 이 시기를 프라혹용 생선을 마련하는 때로 여긴다.
문제는 생선이 조금씩 잡히는 것이 아니라 한꺼번에 몰린다는 점이었다. 냉장시설과 빠른 운송수단이 없던 시절에는 잡은 생선을 모두 신선한 상태로 먹거나 다른 지역까지 보내기 어려웠다.
생선이 몰리면 온 가족이 움직였다
과거에는 내륙에 사는 주민들이 쌀을 싣고 톤레사프나 메콩강 주변까지 이동해 생선과 바꾸기도 했다. 가까운 물길까지 가는 데 며칠이 걸리는 마을도 있었다.
어획기가 시작되면 생선을 잡는 일만 바빠지는 것이 아니었다. 머리와 비늘을 제거하고, 씻고, 소금에 절이는 작업까지 짧은 시간 안에 끝내야 했다. 프라혹을 만드는 집에서는 가족들이 함께 생선을 손질했고, 생산량이 많은 곳에서는 계절 노동자를 따로 고용했다.
작고 상품성이 낮은 민물고기도 버려지지 않았다. 그대로 팔기에는 값이 낮았지만 소금에 절여 발효시키면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는 음식이 됐다. 작은 물고기를 뼈째 발효시키는 종류는 ‘프라혹 츠응(prohok ch’oeung)’, 큰 가물치류의 뼈를 제거해 만드는 종류는 ‘프라혹 삭(prohok sach)’이라고 부른다.

캄보디아의 전통적인 프라혹 제조 모습
- 출처: Sylvain Raybaud, Wikimedia Commons
- 라이선스: CC BY 2.0
씻은 생선이 프라혹이 되기까지
프라혹은 지역과 생산자에 따라 만드는 방법이 조금씩 다르다. 기본적인 순서는 생선의 머리와 비늘, 내장을 제거하고 소금에 절이는 것부터 시작한다.
하룻밤 정도 절이는 과정에서 생선에서 액체가 빠져나오는데, 일부 생산자는 이 액체를 따로 모아 ‘테욱 트레이(teuk trey)’라는 생선 소스로 사용한다. 남은 생선은 햇볕에 말리거나 으깬 뒤 소금을 더 넣어 항아리나 통에 채운다.
통 안에서는 생선이 소금물 위로 떠오르지 않도록 나무 조각이나 무거운 물체로 눌러 둔다. 이후 뚜껑을 닫고 수개월 동안 발효시킨다. 종류와 제조 방식에 따라 발효 기간이 1년에 가까워지는 경우도 있다.
정해진 날짜가 됐다고 무조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숙련된 생산자는 통을 열었을 때 올라오는 냄새와 생선살의 단단함을 살핀다. 조금 덜어 쪄본 뒤 향과 질감을 확인하기도 한다. 온도와 소금, 생선의 상태가 매번 같지 않기 때문에 오랜 경험이 필요한 부분이다.
액젓과 비슷하지만 남기는 것이 다르다
프라혹과 액젓은 모두 생선과 소금을 사용한다. 그래서 같은 음식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완성된 형태와 쓰임은 다르다.
액젓은 발효 과정에서 생긴 액체를 주로 사용한다. 프라혹은 생선살을 으깨거나 잘게 만든 뒤 고형분까지 남긴 페이스트에 가깝다. 국물에 몇 방울 넣는 액체 조미료라기보다 음식에 직접 풀어 넣거나 다른 재료와 섞어 먹는 발효 재료다.
발효가 진행되는 동안 생선살은 점차 부드러워지고 단백질이 작은 성분으로 분해된다. 이 과정에서 프라혹 특유의 짠맛과 감칠맛, 강한 향이 만들어진다.
같은 프라혹이라도 어느 지역에서 어떤 생선과 소금을 사용했는지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생강이나 갈랑갈, 볶은 쌀 등을 넣는 생산자도 있다. 캄보디아 사람들이 출신 지역에서 만든 프라혹을 따로 찾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양념이면서 한 끼가 되는 음식
프라혹은 국이나 찌개에 맛을 더하는 재료로 사용된다. 향신료를 빻아 만든 크뢰응과 섞어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적은 양만 넣어도 생선에서 나온 깊은 맛이 더해진다.
그러나 프라혹을 조미료로만 설명하기도 어렵다. 밥에 곁들이거나 채소를 찍어 먹는 소스로 만들고, 고기와 섞어 하나의 반찬으로 먹기도 한다.
대표적인 음식인 프라혹 끄띠스는 프라혹에 다진 돼지고기와 코코넛밀크, 야자당, 향신료 등을 넣어 익힌 소스다. 오이와 가지, 양배추 같은 생채소를 찍어 먹는다. 코코넛밀크의 부드러운 맛과 채소의 산뜻한 식감이 프라혹의 강한 향을 누그러뜨린다.
프라혹을 돼지고기와 향신료에 섞어 바나나 잎으로 감싼 뒤 굽기도 한다. 이렇게 만든 음식은 밥과 생채소를 함께 먹기 좋고, 들이나 논에서 일할 때 가지고 가기도 편했다.
프라혹은 저장을 위해 시작됐지만 식탁에서는 맛을 만드는 재료가 됐다. 생선이 잡히지 않는 계절에도 사용할 수 있었고, 국부터 소스와 반찬까지 여러 음식에 들어갔다.
지금도 계속되는 저장 방식
프라혹은 오래된 음식이지만 과거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2025년 1월에도 캄보디아의 어획 성수기에 프라혹을 만들기 좋은 물고기가 많이 잡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지금도 톤레사프의 물고기 이동과 프라혹 생산은 같은 계절 안에서 이어지고 있다.
물론 요즘은 냉장시설과 포장 제품을 쉽게 이용할 수 있다. 그래도 시장에서는 지역 생산자가 만든 프라혹을 찾는 사람이 많다. 익숙한 향과 질감이 지역마다 다르고, 어느 집에서 만들었는지도 맛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프라혹을 처음 보면 강한 냄새가 가장 기억에 남을 수 있다. 하지만 톤레사프의 달력을 따라가 보면 이 음식의 성격이 달리 보인다. 프라혹은 특이한 발효 생선이기 전에, 한철에 몰린 물고기를 허투루 버리지 않고 다음 계절의 식탁까지 이어온 저장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