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비일리, 늘어나는 질감을 만드는 발효 미생물

핀란드 비일리는 숟가락으로 뜨면 길게 늘어나는 전통 발효유이다. 이런 독특한 질감을 만드는 유산균과 표면 미생물의 역할에 대하여 살펴보자. 비일리의 끈끈한 질감은 우유를 진하게 굳혀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발효 과정에서 미생물이 만드는 다당류가 우유 안에 촘촘한 구조를 만든것이다. 이제 발효 미생물의 신비한 능력에 대해 알아보자.

요구르트를 숟가락으로 뜨면 덩어리가 부드럽게 끊어진다. 핀란드의 발효유 비일리는 조금 다르다. 한 숟가락을 들어 올리면 내용물이 가느다란 끈처럼 따라 올라온다.

잘 만들어진 비일리는 단순히 걸쭉한 정도를 넘어선다. 그릇 안의 내용물이 서로 붙어 있어 한쪽을 당기면 주변까지 함께 움직인다. 처음 보면 전분이나 젤라틴을 넣은 것처럼 보이지만 전통적인 비일리의 질감은 발효 미생물이 만든다.

핀란드 사람들이 비일리에서 중요하게 여긴 것은 강한 신맛보다 이 독특한 질감이었다.

베리류를 곁들인 핀란드 비일리

출처: JP001, Wikimedia Commons

라이선스: CC BY-SA 4.0

진한 요구르트와 늘어나는 비일리는 다르다

우유에서 물을 빼면 그릭 요구르트처럼 진한 질감을 만들 수 있다. 비일리는 물을 제거해서 되직해진 발효유가 아니다.

전통적인 비일리에는 락토코쿠스 락티스 크레모리스라는 유산균이 들어 있다. 이 균은 우유를 발효하면서 산뿐만 아니라 세포 밖으로 다당류를 만들어 낸다.

다당류는 여러 개의 당이 길게 연결된 물질이다. 비일리에서는 이 물질이 우유의 단백질과 수분 사이에 가느다란 그물망을 만든다. 숟가락으로 비일리를 들어 올렸을 때 쉽게 끊어지지 않고 길게 늘어나는 이유다.

비일리에서 발견된 다당류에는 비일리안이라는 이름도 붙었다. 핀란드 비일리의 질감을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성분이다.

이 질감은 제조 과정의 실수가 아니다. 다른 유제품이라면 끈적거림이 품질 문제로 여겨질 수 있지만 비일리에서는 오래전부터 좋은 특징으로 받아들여졌다.

신맛과 질감은 같은 균이 전부 만들지 않는다

비일리에는 한 종류의 미생물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다. 우유를 시게 만드는 균과 향을 만드는 균, 질감을 만드는 균이 함께 작용한다.

유산균은 우유에 있는 유당을 이용해 젖산을 만든다. 산도가 높아지면 우유 단백질이 서로 뭉치면서 액체였던 우유가 부드럽게 굳는다.

일부 유산균은 버터를 떠올리게 하는 향을 만드는 데 관여한다. 그래서 비일리는 신맛만 강한 발효유라기보다 순한 산미와 크림 같은 향이 함께 느껴진다.

여기에 다당류를 만드는 균이 더해져 비일리 특유의 늘어나는 구조가 완성된다. 같은 우유를 사용하더라도 어떤 발효 균주를 넣었는지에 따라 평범한 발효유가 될 수도 있고 끈이 길게 생기는 비일리가 될 수도 있다.

표면에 생기는 얇은 막의 정체

전통적인 비일리의 표면에는 벨벳처럼 보이는 희고 얇은 막이 생길 수 있다. 이 막은 우유 안에서 활동하는 유산균과 다른 미생물이 만든다.

주로 거론되는 미생물은 지오트리쿰 칸디둠이다. 치즈 제조에도 이용되는 곰팡이의 한 종류로 비일리 표면에서 자라며 부드러운 막과 고유한 향을 만든다.

우유 안에서는 유산균이 신맛과 점성을 만들고, 공기와 닿는 윗부분에서는 표면 미생물이 자란다. 한 그릇 안에서도 위치에 따라 서로 다른 발효가 진행되는 셈이다.

다만 비일리 표면에 생긴 전통 발효 막과 보관 중 우연히 생긴 곰팡이는 같은 것이 아니다. 정해진 종균으로 관리한 제품이 아니라면 임의로 생긴 곰팡이를 정상적인 발효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높은 온도를 유지하지 않아도 발효된다

일반적인 요구르트를 만들 때 사용하는 균은 비교적 따뜻한 온도에서 활발하게 움직인다. 우유를 데운 뒤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는 이유다.

비일리에 사용되는 유산균은 중온성 미생물로 분류된다. 요구르트 발효만큼 높은 온도를 계속 유지하지 않아도 실내 온도 부근에서 활동할 수 있다.

이러한 특징은 북유럽의 가정환경과 잘 맞았다. 별도의 가열 장치를 사용하지 않고 우유에 이전 비일리나 종균을 넣은 뒤 실내에서 굳힐 수 있었다.

발효가 끝난 비일리는 서늘하게 보관한다. 온도가 내려가면 발효 속도가 느려지고 완성된 질감과 맛을 유지하기 쉬워진다.

비일리가 핀란드에서 이어질 수 있었던 배경에는 우유라는 재료뿐만 아니라 낮은 온도에서도 움직이는 발효 미생물이 있었다.

이전 그릇의 비일리를 다음 우유에 넣다

전통적으로 비일리는 완성된 비일리 일부를 새 우유에 섞는 방식으로 이어졌다. 한 번 좋은 발효가 이루어지면 그 안의 미생물을 다음 제조에 다시 이용할 수 있었다.

집마다 이어온 발효 균주의 구성이 완전히 같지는 않았다. 늘어나는 정도와 신맛, 표면 막의 모양도 조금씩 달라질 수 있었다. 어느 집의 비일리는 단단하게 굳고, 다른 집의 것은 더 길고 부드럽게 늘어났다.

1926년 핀란드 히르바스바라에서 촬영된 사진에도 나무 용기에 우유를 담아 비일리를 만드는 모습이 남아 있다. 비일리가 최근에 개발된 가공식품이 아니라 가정에서 만들어 먹던 발효유였음을 보여준다.

1926년 핀란드 히르바스바라의 비일리 제조 모습

출처: Ahti Rytkönen, Finnish Heritage Agency

라이선스: CC BY 4.0

현재 판매되는 비일리는 살균한 우유와 관리된 종균을 사용해 공장에서 생산한다. 발효 온도와 시간을 일정하게 맞출 수 있어 제품마다 질감이 크게 달라지는 문제도 줄었다.

전통 방식은 가정의 발효종을 계속 이어가는 구조였고, 현대 제품은 필요한 미생물을 선별해 같은 결과를 반복하는 구조다. 방식은 달라졌지만 늘어나는 질감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은 그대로 남아 있다.

모든 비일리가 길게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핀란드에서 비일리라는 이름으로 판매되는 제품이 모두 같은 질감을 가진 것은 아니다. 사용하는 균주와 우유의 지방 함량, 제조 방식에 따라 차이가 난다.

길게 늘어나는 전통형 비일리가 있는 반면 부드러운 요구르트와 비슷하게 끊어지는 제품도 있다. 과일 맛을 더한 제품과 지방을 줄인 제품도 판매된다.

크림으로 만드는 케르마비일리는 사워크림처럼 요리에 이용한다. 허브를 섞어 생선이나 감자에 곁들이는 소스의 바탕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따라서 핀란드에서 비일리를 구입할 때는 발효유라는 이름만 보고 모두 같은 제품이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전통적인 끈 모양의 질감을 찾는다면 제품 설명에서 길게 늘어나는 유형인지 확인해야 한다.

핀란드에서는 어떻게 먹을까

비일리는 보통 차갑게 먹는다. 별다른 조리 없이 숟가락으로 떠먹고, 신맛이 부담스러우면 설탕이나 계피를 조금 뿌린다.

딸기와 블루베리 같은 베리류를 올리거나 잼을 섞기도 한다. 곡물 플레이크나 뮤즐리를 곁들이면 아침 식사로 먹기 편하다.

먹기 전에 세게 저으면 원래의 길게 이어지는 구조가 끊어질 수 있다. 전통적인 질감을 제대로 보려면 먼저 젓지 않은 상태에서 숟가락으로 떠보는 편이 낫다.

비일리의 맛은 세계의 다른 발효유와 비교하면 아주 강한 편이 아니다. 이 음식을 기억하게 만드는 것은 혀에 남는 신맛보다 숟가락을 따라 올라오는 질감이다.

그 질감은 우유를 오래 졸이거나 첨가물을 넣어 만든 결과가 아니다. 유산균이 발효 과정에서 만들어 낸 다당류와 표면에서 활동하는 미생물이 함께 만든 것이다.

핀란드 비일리는 같은 우유도 어떤 미생물과 발효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음식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눈으로 보여주는 발효유다.

참고한 자료

필리핀 바고옹은 왜 지역마다 맛과 모습이 다를까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