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아 크베브리 와인, 땅속 항아리에서 완성되는 전통 양조법

조지아의 전통 와인 저장고 바닥에는 크베브리라는 커다란 토기 항아리가 묻혀 있다. 포도즙과 껍질, 씨가 항아리 안에서 오랫동안 머무는 과정과 이 방식이 지금까지 이어진 이유를 알아본다.

조지아의 전통 와인 저장고인 마라니에 들어가면 바닥에 둥근 뚜껑들이 줄지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뚜껑 아래에는 사람이 들어갈 만큼 큰 토기 항아리가 목 부분만 남긴 채 묻혀 있다. 이 항아리가 크베브리다.

와인을 만드는 용기라면 나무통이나 금속 탱크를 먼저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조지아에서는 흙으로 빚은 항아리를 땅속에 묻고 그 안에서 발효와 숙성을 이어왔다. 단순히 오래된 도구를 보존한 것이 아니다. 포도를 수확하고 항아리를 채우며 와인을 나누는 과정 전체가 가족과 마을의 생활문화로 이어져 왔다.

바닥 아래에 숨은 발효 용기

크베브리는 손잡이가 없는 달걀 모양의 토기다. 크기는 집마다 다르지만 수백 리터부터 수천 리터를 담는 항아리도 있다. 이렇게 큰 그릇을 지상에 세워 두면 내용물의 무게를 견디기 어렵고 온도 변화의 영향도 크게 받는다.

항아리를 목 부분까지 땅에 묻으면 주변의 흙이 벽을 받쳐 준다. 한낮과 밤의 온도 차이도 지상에 놓인 용기보다 완만하게 전달된다. 냉각 장치가 없던 시절에는 발효 환경을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이었다.

항아리 입구가 바닥 높이에 있으므로 포도즙을 넣거나 발효 중인 내용물을 저을 때도 거대한 용기를 들어 올릴 필요가 없다. 발효가 끝난 뒤에는 입구를 막아 숙성을 이어간다. 마라니의 바닥이 곧 발효실이자 저장 공간이 되는 셈이다.

조지아 카헤티 지역 와인 저장고 바닥에 묻힌 크베브리 항아리

조지아 카헤티의 전통 와인 저장고 바닥에 묻힌 크베브리. 항아리 입구만 바닥 위로 드러나 있다.

사진: tomasz przechlewski / CC BY 2.0

포도를 짜고 남은 것을 버리지 않는다

크베브리 방식의 특징은 항아리의 재료에만 있지 않다. 포도를 짠 뒤 얻은 즙과 함께 껍질과 씨를 넣어 발효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줄기를 넣는지는 지역과 생산자에 따라 달라진다. 조지아에서는 포도를 짜고 남은 이러한 고형물을 차차라고 부른다.

발효가 활발할 때는 껍질과 씨가 위로 떠오른다. 그대로 두면 표면이 마르거나 발효가 고르게 진행되지 않을 수 있어 전통적으로 하루에 여러 번 저어 준다. 발효가 잦아들면 고형물은 서서히 가라앉고 그 위에 와인이 자리 잡는다.

같은 조지아 안에서도 넣는 양은 다르다. 동부 카헤티에서는 포도에서 나온 차차를 대부분 사용하는 방식이 잘 알려져 있다. 서부 이메레티에서는 포도즙에 넣는 차차의 양을 줄이는 경우가 많다. 크베브리라는 같은 항아리를 사용하더라도 지역의 포도와 기후, 집안의 방식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이유다.

흰 포도가 호박빛을 띠는 까닭

일반적인 화이트 와인은 포도를 짠 뒤 껍질과 씨를 비교적 빠르게 분리한다. 조지아의 일부 크베브리 와인은 흰 포도즙을 껍질과 씨에 오래 접촉시킨다. 이 과정에서 색과 향을 이루는 성분뿐 아니라 떫은맛을 만드는 탄닌도 와인으로 옮겨간다.

그래서 완성된 와인은 연한 황금색을 지나 짙은 호박색이나 차와 비슷한 빛을 띠기도 한다. 흰 포도로 만들었지만 입안에서 느껴지는 질감은 일반적인 화이트 와인보다 단단할 수 있다. 색을 따로 첨가해서 생기는 변화가 아니라 포도 껍질과 함께 보낸 시간이 만든 결과다.

다만 크베브리에 담았다고 모든 와인이 호박색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적포도로도 크베브리 와인을 만들며, 흰 포도를 사용하더라도 껍질과 접촉하는 기간에 따라 색과 질감이 달라진다. 크베브리는 특정한 색의 와인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발효와 숙성에 사용하는 용기를 가리킨다.

르카치텔리 포도로 만든 조지아 크베브리 호박색 와인

르카치텔리 포도로 만든 크베브리 와인. 포도 껍질과 씨에 오래 닿으면서 짙은 호박빛을 띤다.

사진: Ghirlandajo / CC BY-SA 4.0

8000년 전 와인과 오늘의 크베브리

조지아 와인을 소개할 때 8000년이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2017년 국제 연구진은 조지아의 신석기 유적에서 나온 토기 조각을 분석해 기원전 6000년에서 5800년 무렵의 포도주 흔적을 확인했다. 현재까지 확인된 매우 이른 시기의 포도 와인 증거다.

그렇다고 당시의 토기가 오늘날 크베브리와 완전히 같은 형태였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고고학 연구가 확인한 것은 현재 조지아 지역에서 아주 오래전부터 포도를 발효해 음료로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볼 수 있는 달걀 모양의 대형 크베브리는 오랜 시간에 걸쳐 형태와 제작 기술이 다듬어진 결과로 보는 편이 정확하다.

오랜 역사를 강조하는 것보다 중요한 점은 이 방식이 박물관 속에서만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지금도 여러 가정과 생산자가 크베브리를 사용하며 지역마다 다른 제조법을 이어가고 있다.

항아리보다 오래 남은 것은 사람의 기술이다

크베브리 하나를 만드는 데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점토를 조금씩 쌓아 형태를 만들고 충분히 말린 다음 가마에서 구워야 한다. 용량이 커질수록 벽의 두께와 균형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일이 어려워진다. 완성된 뒤에도 발효 전에 내부를 꼼꼼하게 씻고 관리해야 한다.

이 기술은 정해진 설명서만으로 전해진 것이 아니다. 가족과 이웃이 포도를 함께 수확하고, 아이들이 어른의 작업을 지켜보면서 자연스럽게 배웠다. 포도를 재배하는 법부터 항아리를 빚고 굽는 과정까지 여러 사람의 경험이 연결되어야 크베브리 와인이 완성된다.

UNESCO가 2013년 조지아의 전통 크베브리 양조법을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한 이유도 항아리의 오래된 연대에만 있지 않다. 와인 저장고는 가족의 중요한 공간이었고, 와인은 일상적인 식사와 손님맞이, 종교 행사와 축하 자리에서 빠지지 않았다. 크베브리를 둘러싼 지식과 공동 작업이 조지아 사람들의 생활방식과 정체성을 보여준다고 본 것이다.

땅속 항아리가 지금도 사용되는 이유

금속 탱크를 이용하면 온도와 위생 상태를 훨씬 편리하게 관리할 수 있다. 그럼에도 크베브리가 사라지지 않은 것은 옛날 방식이라는 상징성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포도 껍질과 씨를 함께 발효하고, 토기 안에서 시간을 들여 숙성하는 과정은 다른 용기에서 만든 와인과 구별되는 색과 질감을 만든다.

더 중요한 이유는 이 항아리가 사람들을 이어 주는 장소라는 점이다. 수확한 포도를 함께 다루고 땅속 항아리를 열어 와인을 나누는 일은 한 해의 농사를 마무리하는 과정이면서 가족의 기억을 되살리는 시간이기도 하다.

크베브리는 와인을 담는 그릇이지만 조지아에서 그 역할은 그보다 넓다. 땅속에 묻힌 항아리 하나에는 포도를 기른 계절과 항아리를 만든 사람의 기술, 같은 자리에서 와인을 나눠 온 공동체의 시간이 함께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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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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