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 무르식, 훈연한 박과 발효유가 만나는 과정

케냐의 무르식은 우유만 발효한다고 완성되지 않는다. 안쪽을 연기로 그을린 박 용기 소테트가 색과 향, 발효 환경에 영향을 주며 칼렌진 공동체의 일상과 축하 자리에도 함께한다.

우유를 발효한 음식이라고 하면 흰색이나 크림색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케냐의 무르식은 조금 다르다. 잿빛이 감도는 색과 은은한 훈연 향이 남기도 한다. 그 차이는 우유보다 우유를 담는 용기에서 시작된다.

무르식을 만드는 전통 박 용기는 소테트라고 부른다. 속을 비우고 말린 박을 깨끗하게 손질한 뒤, 안쪽을 나뭇가지의 연기와 숯가루로 그을려 사용한다. 여기에 우유를 담고 여러 날 발효하면 새콤한 맛과 훈연 향이 섞인 발효유가 만들어진다.

무르식은 케냐 전역에서 똑같은 방식으로 만드는 발효유가 아니다. 주로 리프트밸리 지역의 칼렌진 공동체와 연결된 음식이며, 가정과 지역에 따라 우유의 종류와 발효 방법에도 차이가 있다.

케냐의 모든 발효유가 무르식은 아니다

케냐에는 공동체마다 다른 이름과 방법으로 만든 발효유가 있다. 마사이 공동체의 쿨레 나오토, 키시 공동체의 아마베레 아마루라누, 케냐 북동부 목축 지역의 수사도 그 예다.

그중 무르식은 칼렌진 공동체가 만들어 온 발효유를 가리킨다. 일반적으로 소젖을 사용하지만 지역과 가정에 따라 염소젖을 이용하기도 한다. 우유를 박에 넣어 시게 만든다는 기본 원리는 비슷해 보여도 용기 손질법과 발효 중 관리 방법이 다르다.

무르식을 다른 발효유와 구분하는 가장 눈에 띄는 요소는 소테트다. 현대적인 플라스틱이나 금속 통에 우유를 넣는 것과 달리, 말린 박의 안쪽을 훈연한 뒤 발효 용기로 사용한다.

소테트는 단순한 우유병이 아니다

소테트는 말린 박을 그대로 사용하는 용기가 아니다. 충분히 여문 박을 말리고 내부의 씨와 조직을 제거한 다음, 여러 차례 씻고 건조해야 사용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는 길고 휘어진 나무 막대 등을 이용해 안쪽을 닦는다. 입구가 좁고 몸통이 둥글기 때문에 손이 안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내부를 문지를 수 있는 도구가 필요했다.

손질을 마친 박에는 불에 그을린 나뭇가지를 넣거나 안쪽 벽에 문질러 검은 층을 남긴다. 어떤 나무를 선택하는지는 지역의 식물과 가정에서 전해진 방법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 과정을 단순히 박을 검게 칠하는 일로 보기는 어렵다. 열과 연기가 용기의 냄새와 습기를 줄이고, 숯가루는 박의 미세한 틈을 메우는 데 도움을 준다. 발효가 끝난 우유에는 이 과정에서 생긴 색과 향도 일부 남는다.

케냐에서 액체를 보관하고 따르는 데 사용하는 전통 박 용기

케냐에서 액체를 보관하거나 따를 때 사용하는 전통 박 용기. 무르식의 발효 용기인 소테트도 속을 비우고 말린 박으로 만든다.

사진: Re-sendings / CC BY-SA 4.0

연기와 숯가루가 남기는 변화

소테트의 안쪽을 그을리는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무르식 특유의 향과 색을 만드는 데 있다. 새 우유만 넣었을 때와 달리 훈연한 용기에 담긴 우유에는 나무 연기에서 온 향이 더해진다.

검은 숯가루가 우유와 섞이면서 완성된 무르식의 색이 회색이나 옅은 갈색으로 보이기도 한다. 다만 모든 무르식이 똑같이 어두운 것은 아니다. 박을 그을린 정도와 나무의 종류, 우유를 담아 둔 시간에 따라 색이 달라진다.

훈연 과정은 용기 내부를 뜨겁게 하고 건조하는 효과도 있다. 그렇다고 그을린 박이 완전히 살균된 용기가 된다는 뜻은 아니다. 전통적인 경험으로 관리해 온 과정이지만, 위생과 온도 관리가 부족하면 발효 결과가 일정하지 않을 수 있다.

이 점이 무르식에서 용기가 중요한 이유다. 소테트는 완성된 발효유를 옮기는 병이 아니라 발효가 일어나는 공간이며, 우유의 향과 색을 바꾸는 제조 도구이기도 하다.

발효를 시작하는 것은 박이 아니라 미생물이다

전통적인 제조에서는 우유를 끓인 뒤 식혀 소테트에 담는다. 가정에 따라 앞서 잘 발효된 무르식을 조금 남겨 다음 우유에 섞기도 한다. 이전 발효물의 일부를 새로운 재료에 사용하는 방식이다.

우유가 여러 날 머무는 동안 유산균은 유당을 이용해 젖산을 만든다. 산도가 높아지면서 생우유에서 느껴지던 단맛이 줄고 새콤한 맛이 생긴다. 단백질의 상태도 변하면서 질감은 처음보다 되직해진다.

무르식에서는 유산균만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연구에서는 여러 종류의 유산균과 효모가 함께 확인됐다. 어떤 미생물이 우세한지는 우유의 상태와 발효 시간, 이전 발효물의 사용 여부, 소테트 관리 방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정해진 한 종류의 종균을 사용하는 공장 요구르트와 달리 전통 무르식은 가정의 환경과 이전 발효 과정이 다음 결과에 영향을 준다. 집마다 신맛과 향, 질감이 조금씩 다른 까닭도 여기에 있다.

박을 흔드는 데도 이유가 있다

발효가 끝난 무르식은 바로 따르기보다 소테트를 흔들어 내용물을 섞는 경우가 많다. 가만히 두는 동안 나뉜 액체와 굳은 부분을 다시 고르게 만들기 위해서다.

흔드는 과정은 안쪽에 남은 숯 성분과 우유를 섞어 색과 향을 고르게 만드는 역할도 한다. 완성된 무르식은 마시는 요구르트처럼 부드럽게 흐르기도 하고, 발효 상태에 따라 묽은 죽에 가까운 질감을 보이기도 한다.

이 모습만 보고 무르식을 훈연한 요구르트라고 부르면 이해는 쉽다. 하지만 요구르트라는 말만으로는 소테트의 역할과 자연 발효에서 생기는 차이를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우유와 미생물뿐 아니라 박과 나무 연기까지 제조 과정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케냐 칼렌진 공동체의 무르식 발효 용기 소테트

케냐 칼렌진 공동체가 무르식을 만들고 담는 데 사용하는 전통 박 용기 소테트.

사진: Antony Trivet / CC BY-SA 4.0

일상적인 식사에서 축하 자리까지

무르식은 의식에만 등장하는 특별한 음료가 아니다. 식사 뒤에 마시거나 옥수수 가루로 만든 우갈리와 곁들이는 일상 음식이기도 하다. 우유를 한 번에 소비하기 어려운 목축 생활에서 발효는 다른 맛과 질감으로 우유를 이용하는 방법이 됐다.

한편으로 무르식은 결혼식과 손님맞이, 공동체의 축하 자리에도 놓인다. 칼렌진 공동체에서는 결혼 협의가 잘 마무리됐을 때나 운동선수가 큰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돌아왔을 때 무르식을 나누는 모습도 알려져 있다.

이때 소테트는 음료를 담는 용기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완성된 제품을 병째 사는 것과 달리 박을 손질하고 훈연하는 지식이 필요하고, 그 방법은 가족과 공동체 안에서 다음 세대로 전해졌다.

유네스코는 2026년 케냐의 전통 음식 지식을 기록하고 보호하는 활동을 지원했다. 이 과정에 참여한 공동체 관계자들은 무르식을 앞으로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검토할 수 있는 음식문화 가운데 하나로 제안했다.

이는 무르식이 이미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다는 뜻은 아니다. 아직은 미래의 등재 가능성을 논의하는 단계다. 다만 우유 한 잔이 공동체의 환대와 축하, 세대 간 지식 전승까지 연결한다는 점은 분명하게 드러난다.

전통 발효라고 안전이 저절로 보장되지는 않는다

무르식은 종종 건강식이나 프로바이오틱 발효유로 소개된다. 실제로 여러 유산균이 발견되지만, 모든 무르식이 동일한 미생물 구성을 가진 것은 아니다. 발효식품이라는 이유만으로 특정 건강 효과를 단정해서도 안 된다.

자연 발효의 결과는 원유의 상태와 용기 위생, 발효 온도와 보관 시간에 따라 달라진다. 관련 연구에서도 전통 제조법을 보존하는 것과 함께 깨끗한 원료, 위생적인 용기 관리, 일정한 품질 기준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소테트를 훈연하는 전통에는 오랫동안 쌓인 경험이 담겨 있지만, 연기와 숯가루만으로 모든 오염 위험을 없앨 수는 없다. 따라서 짧은 설명만 보고 가정에서 제조하기보다 위생적으로 생산되고 관리된 제품을 이용하는 편이 안전하다.

무르식의 맛은 용기에서 시작된다

무르식의 재료를 짧게 적으면 우유가 전부인 것처럼 보인다. 실제 제조 과정을 따라가면 우유 외에도 박과 나무, 불과 이전 발효물이 차례로 등장한다.

말린 박은 우유를 담는 그릇이 되고, 그을린 나무는 향과 색을 남긴다. 유산균과 효모는 우유의 맛과 질감을 바꾸고, 발효가 끝난 뒤에는 소테트를 흔들어 다시 하나의 음료로 만든다.

케냐 무르식의 특징은 강한 신맛이나 어두운 색 하나에만 있지 않다. 주변에서 구한 박과 나무를 이용해 우유를 다루고, 완성된 음료를 일상과 축하 자리에서 나누어 온 방식에 있다. 무르식 한 잔에는 발효 기술과 칼렌진 공동체의 생활문화가 함께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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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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