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의 키시크는 요구르트를 말린 가루도, 불구르만 넣은 곡물가루도 아니다. 요구르트와 불구르를 함께 발효하고 햇볕에 말린 저장식이다. 발효유의 산미와 밀의 저장성을 결합해 여름의 재료를 겨울까지 남긴 레바논의 음식이다. 지금부터 여름의 우유와 밀을 겨울까지 남긴 과정에 대해 알아볼까?
레바논 키시크를 가루 상태로 보면 밀가루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빛바랜 크림색 가루만 보고 요구르트가 들어갔다고 알아채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 가루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따라가 보면 불구르와 발효유, 소금, 며칠간의 손질과 여름 햇볕이 모두 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키시크의 특징은 우유와 밀을 따로 보관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요구르트에 불구르를 넣어 발효시킨 뒤 완전히 말리고, 필요할 때 다시 물에 풀어 한 끼로 만든다. 쉽게 상하는 유제품과 오래 보관하기 좋은 곡물이 한 재료 안에서 만난 셈이다.
여름에 시작하는 겨울 음식
레바논 농촌에서 키시크를 만드는 시기는 대체로 여름이다. 이때는 염소나 양, 소의 젖을 비교적 넉넉하게 얻을 수 있고 햇볕도 강해 건조 작업에 유리하다.
요구르트는 그대로 두면 보관 기간이 길지 않다. 반면 불구르는 밀을 익힌 뒤 말리고 부순 곡물이어서 저장과 조리가 편하다. 키시크는 요구르트의 맛을 불구르에 흡수시키고 수분을 줄이는 방식으로 두 재료의 장점을 한데 묶었다.
단순히 남은 우유를 처리한 음식이라고만 보기는 어렵다. 우유가 풍부한 계절에 미리 만들어 두었다가 신선한 유제품을 구하기 어려운 겨울에 사용하는, 계절을 건너기 위한 저장식에 가깝다.

레바논 키시크의 재료로 쓰이는 굵은 불구르
출처: Alex Ex, Wikimedia Commons
라이선스: CC BY-SA 3.0
요구르트의 수분을 받아들이는 불구르
키시크는 요구르트와 불구르를 한 번 섞고 바로 말리는 음식이 아니다. 레바논의 서베카와 슈프 지역 생산자들을 조사한 연구를 보면, 굵은 불구르를 요구르트에 담근 뒤 며칠 동안 매일 손으로 비비고 섞는 과정이 이어진다.
불구르가 요구르트를 흡수하면서 반죽이 마르지 않도록 발효유를 조금씩 더하고, 소금도 나누어 넣는다. 매일 반죽을 확인하는 이유는 수분을 고르게 퍼뜨리고 표면이 지나치게 마르거나 곰팡이가 생기는 것을 줄이기 위해서다.
연구에 기록된 방식에서는 불구르가 요구르트를 흡수하는 데 약 나흘이 걸렸고, 이후 발효가 계속되어 약 아흐레쯤 지나면 ‘그린 키시크’라고 부르는 단계에 도달했다. 다만 기간과 재료의 비율은 날씨와 가정의 방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키시크에는 전국 어디서나 똑같이 따르는 하나의 조리법이 있는 것이 아니다.
아직 가루가 되기 전의 키시크
그린 키시크는 완전히 말리지 않은 부드러운 반죽 상태다. 이름 때문에 초록색 음식을 떠올리기 쉽지만, 여기서는 말리기 전의 신선한 키시크를 가리키는 표현에 가깝다.
이 상태로 바로 먹기도 하고 작은 덩어리로 만들어 올리브오일에 보관하기도 한다. 우리가 흔히 키시크라고 생각하는 마른 가루는 이 반죽에서 다시 한 단계 더 나아간 결과물이다.
신선한 반죽으로 먹을 것인지, 오래 보관할 가루로 만들 것인지가 이 지점에서 갈린다. 같은 재료가 그날 먹는 음식이 되기도 하고 몇 달 뒤를 위한 식량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지붕 위에서 가벼운 가루가 된다
오래 보관할 키시크는 반죽을 깨끗한 천 위에 펼쳐 햇볕에 말린다. 전통적으로는 여름 햇볕이 잘 드는 집 지붕이 건조 장소로 이용됐다.
겉만 마르고 속에 수분이 남지 않도록 아침마다 덩어리를 손으로 비벼 잘게 부순다. 충분히 단단하게 마르면 마지막으로 곱게 갈아 가루로 만든다. 이렇게 완성된 키시크는 부피가 작고 운반하기 편하며, 필요한 양만 덜어 사용할 수 있다.
발효에서 생긴 산미와 건조를 통해 낮아진 수분은 보관에 유리한 조건을 만든다. 그렇다고 전통 발효식품이 저절로 안전해지는 것은 아니다. 깨끗한 도구와 건조 장소를 사용하고 내부까지 충분히 말리는 관리가 함께 필요하다.
우유와 밀에 따라 달라지는 맛
레바논 키시크라고 해서 모두 같은 맛과 색을 내는 것은 아니다. 2018년 발표된 현지 조사에서는 서베카 지역 생산자들이 주로 염소젖을 사용한 반면, 슈프에서는 소젖이나 소젖과 염소젖을 섞어 사용하는 사례가 더 많이 확인됐다. 일부 가정에서는 요구르트 대신 수분을 뺀 발효유인 라브네를 사용하기도 했다.
밀의 선택도 차이를 만든다. 밝은 색의 불구르를 사용하면 완성된 키시크도 비교적 옅은 색을 띠고, 지역 밀이나 갈색 불구르를 사용하면 색과 곡물 맛이 달라진다. 어느 재료가 정답이라기보다, 그 지역에서 구할 수 있는 우유와 밀에 맞춰 키시크가 달라졌다고 보는 편이 자연스럽다.

올리브오일을 곁들인 레반트 지역의 라브네
출처: Omernos, Wikimedia Commons
라이선스: Public Domain
가루 한 봉지가 다시 한 끼가 되는 방법
마른 키시크는 그대로 떠먹는 가루가 아니다. 물에 풀어 끓이면 걸쭉하고 새콤한 수프가 되고, 양파나 마늘, 감자, 고기 등을 더하면 든든한 음식이 된다. 반죽 위에 키시크를 올려 구운 마나키시도 알려져 있다.
여기에 키시크가 저장식으로 오래 남을 수 있었던 이유가 있다. 보관할 때는 가볍고 건조하지만, 물과 불을 만나면 다시 부피가 있는 한 끼가 된다. 한 가지 가루를 집에 있는 채소나 고기와 조합할 수 있으므로 계절과 형편에 따라 활용하기도 쉽다.
음식과 함께 이어진 공동 작업
키시크를 만드는 데는 생각보다 많은 손이 필요하다. 현지 조사에서는 세 명에서 다섯 명 정도가 약 20일에 걸쳐 작업하는 사례가 기록됐다. 요구르트를 보충하고 반죽을 뒤집으며, 햇볕에 말린 덩어리를 비비고 마지막으로 가루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작업은 주로 가정의 여성들이 맡아 왔다. 말린 키시크 덩어리를 함께 비비는 날에는 이웃 여성들이 모이기도 했다. 저장식 한 봉지를 준비하는 일이 동시에 기술을 전하고 사람을 만나는 시간이었던 셈이다.
지금은 플라스틱 용기와 전동 분쇄기를 사용하는 가정도 늘었지만, 여름의 우유와 곡물을 발효·건조해 겨울까지 이어 간다는 기본 원리는 남아 있다.
여름의 재료를 겨울 식탁으로 옮기다
레바논 키시크는 단순히 신맛이 나는 곡물가루가 아니다. 쉽게 상하는 우유는 발효시키고, 불구르에는 그 수분과 맛을 흡수시킨 다음, 강한 햇볕으로 다시 건조한다. 서로 다른 두 재료가 만나면서 보관하기 쉽고 활용 범위가 넓은 식량이 된다.
키시크를 이해하는 핵심은 독특한 맛보다 계절 사이의 연결에 있다. 여름에 얻은 우유와 밀을 가루로 남겨 두었다가 추운 계절에 다시 따뜻한 한 그릇으로 되돌리는 것. 그것이 레바논의 여러 가정에서 키시크가 오랫동안 만들어진 가장 현실적인 이유다.
참고 자료
- Mona Chedid 외, The Lebanese Kishk: A Traditional Dairy Product in a Changing Local Food System, Journal of Food Research, 2018.
- Food Heritage Foundation, Kishk, the Warmth of Lebanese Win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