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폰 예 지는 말콩을 삶아 발효하고 졸여 만드는 짙은 콩 페이스트이다. 바간 주변에서 발달한 폰 예 지가 밥과 반찬, 돼지고기 요리에 쓰이는 방식을 살펴보자. 폰 예 지는 많은 양을 한 번에 먹는 음식이 아니고 양파와 기름을 섞어 반찬으로 내거나 고기와 생선 요리에 더해 입맛을 돋우는 음식이다. 재미있게 읽기를 바란다.
미얀마의 폰 예 지는 첫인상이 화려한 음식은 아니다. 접시에 담긴 모습은 검은색에 가까운 짙은 갈색이고, 질감도 된장보다 매끄러운 풀처럼 보인다. 하지만 미얀마 식탁에서 폰 예 지는 눈에 띄는 색보다 쓰임새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밥에 조금 섞어 먹고, 양파와 고추를 곁들여 반찬으로 만들며, 돼지고기나 생선 요리의 맛을 잡는 데도 사용한다. 한 번에 많은 양을 먹기보다 필요한 곳에 한두 숟갈씩 보태는 음식이다.
영문 표기도 Pon ye gyi, Pone yay gyi, Pon yay gyi처럼 조금씩 다르다. 한국어로는 폰 예 지 또는 뽄예지라고 적는다.

양파와 고추, 기름을 섞어 반찬으로 만든 폰 예 지
출처: Ninjastrikers, Wikimedia Commons
라이선스: CC BY-SA 4.0
된장처럼 보여도 출발점은 다르다
폰 예 지를 처음 접하면 검은 된장이나 콩을 으깬 페이스트를 떠올리기 쉽다. 둘 다 콩을 이용한 발효 조미료라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사용하는 콩과 만드는 방법에는 차이가 있다.
전통적인 폰 예 지의 대표 원료는 말콩이다. 영어로 호스 그램이라고 부르는 작고 단단한 콩으로, 학명은 Macrotyloma uniflorum이다. 미얀마에서는 말콩 외에도 지역에서 구할 수 있는 다른 콩을 사용해 폰 예 지를 만들기도 한다.
여기서 한 가지 짚어볼 부분이 있다. 폰 예 지는 삶은 콩알을 그대로 으깨 발효한 음식이라고 소개될 때가 많지만, 실제 제조에서는 콩을 오래 삶아 얻은 진한 액체가 중요하게 다뤄진다.
콩을 물과 함께 충분히 삶은 다음 우러난 액체와 부드러워진 콩의 성분을 걸러낸다. 이 액체를 일정 시간 발효하고 다시 오랫동안 저으며 졸이면 묽었던 콩물이 짙고 끈기 있는 페이스트로 변한다. 일부 제조 방식에서는 이전에 만든 폰 예 지를 조금 넣어 발효의 출발점으로 사용한다.
2019년 미얀마 학술원에 실린 연구에서도 말콩을 장시간 삶은 뒤 얻은 액체를 발효하고, 다시 가열해 페이스트로 만드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연구에서 적합하다고 제시한 발효 시간은 12시간이었지만, 이는 실험 조건에서 얻은 결과다. 실제 제품의 발효 시간과 농도는 생산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폰 예 지를 만드는 데 사용되는 말콩
출처: Sanjay Acharya, Wikimedia Commons
라이선스: CC BY-SA 4.0
바간에서 폰 예 지를 찾는 이유
폰 예 지는 미얀마 전역에서 먹지만 생산지로 자주 언급되는 곳은 중부 건조 지역이다. 바간과 냐웅우, 살레, 미잉잔 주변이 대표적이다.
우연히 제조지만 모여 있는 것은 아니다. 말콩 재배 지역과 폰 예 지 생산 지역이 상당 부분 겹친다. 미얀마 학술원 연구에 따르면 말콩은 미잉잔과 냐웅우, 타웅따, 파코쿠 일대에서 주로 재배된다. 가까운 곳에서 얻은 콩을 오래 삶고 발효해 지역의 조미료로 만든 것이다.
바간은 오래된 불교 유적과 사원으로 잘 알려진 곳이지만, 현지 음식을 이야기할 때는 폰 예 지도 빠지지 않는다. 냐웅우를 비롯한 바간 주변에는 가정 규모에 가까운 소규모 생산 시설이 남아 있으며, 이 지역을 방문한 사람이 가져가는 음식 선물로도 판매된다.
포장 방식은 달라졌다. 과거에는 덩어리나 페이스트를 단순하게 싸서 팔았다면 지금은 작은 봉지와 용기, 유리병에 담은 제품도 볼 수 있다. 수분을 남긴 부드러운 제품뿐 아니라 비교적 마른 형태도 유통된다.
폰 예 지는 단독 요리보다 연결하는 음식에 가깝다
진한 콩 페이스트라고 해서 밥 위에 많은 양을 올려 먹는 것은 아니다. 폰 예 지는 다른 재료와 섞였을 때 쓰임이 더 분명해진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얇게 썬 양파나 샬롯, 마늘, 고추와 섞는 것이다. 여기에 땅콩기름이나 향을 낸 기름을 조금 더하면 밥과 곁들이는 반찬이 된다. 생양파의 아삭함과 기름의 고소함이 폰 예 지의 묵직한 콩 맛을 풀어준다.
이렇게 여러 재료를 섞어 무치듯 만드는 음식은 미얀마의 토우 문화와도 연결된다. 토우는 재료를 섞어 만든 샐러드나 무침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생채소 샐러드와 달리 발효 찻잎, 국수, 감자, 콩 페이스트처럼 다양한 재료가 중심이 될 수 있다.
폰 예 지를 돼지고기와 함께 조리하는 방법도 널리 알려져 있다. 지방이 있는 고기에 폰 예 지의 신맛과 콩 맛이 더해지면 기름진 느낌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다. 생선 요리나 밥을 섞은 음식에도 사용할 수 있다.
따라서 폰 예 지를 미얀마식 된장이라고만 설명하면 실제 쓰임의 일부만 전달된다. 국이나 찌개의 기본 장이라기보다 무침과 밥, 고기 요리를 이어주는 농축 조미료에 더 가깝다.
짠맛보다 신맛이 먼저 느껴지는 제품도 있다
폰 예 지의 맛을 한 단어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삶은 콩에서 나온 구수함이 있고, 오래 졸인 페이스트에서 느껴지는 묵직함도 있다. 제품에 따라 발효에서 생긴 신맛이 선명하게 나타난다.
미얀마의 폰 예 지 생산 과정을 조사한 음식 연구가는 냐웅우에서 맛본 제품에 대해 짠맛보다 신맛이 두드러졌다고 설명했다. 일본에서 직접 만든 것은 신맛이 더 약했는데, 발효 온도와 환경의 차이를 그 이유로 추정했다.
모든 폰 예 지가 똑같이 시거나 짜지 않다는 의미다. 사용한 콩과 물의 양, 발효 시간, 졸이는 정도에 따라 색과 농도도 달라진다. 시판 제품에는 소금이나 기름, 조미 재료가 추가되기도 하므로 포장지의 원재료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발효 음식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유산균 식품으로 소개하는 것도 피하는 편이 좋다. 폰 예 지는 발효 후 오랫동안 가열하고 졸이는 과정을 거친다. 이 음식의 특징은 살아 있는 미생물보다 발효와 농축을 통해 만들어진 산미와 콩 맛에서 찾을 수 있다.
매일 먹기 쉬웠던 데에는 이유가 있다
폰 예 지가 일상 조미료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특별한 날에만 먹어야 하는 음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밥과 양파만 있어도 간단한 반찬을 만들 수 있고, 고기나 생선 요리에는 별도의 양념처럼 사용할 수 있다.
한 번에 사용하는 양이 적다는 점도 중요하다. 진한 페이스트를 조금씩 덜어 쓰기 때문에 한 봉지나 한 용기로 여러 끼니를 준비할 수 있다. 이미 발효와 농축이 끝난 상태라 복잡한 손질도 필요하지 않다.
맛의 역할도 분명하다. 담백한 밥에는 구수함과 산미를 더하고, 기름진 돼지고기에는 무게를 줄여주는 신맛을 보탠다. 양파와 고추를 섞으면 별도의 반찬이 된다. 하나의 제품이 밥, 무침, 고기, 생선 사이를 오갈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유연함은 폰 예 지가 공장에서 만든 완제품이 등장한 뒤에 새로 생긴 특징이 아니다. 지역에서 만든 콩 페이스트를 그날의 식재료에 맞춰 사용해 온 생활 방식이 현대의 포장 제품으로 이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검은 페이스트 한 숟갈이 보여주는 것
폰 예 지는 미얀마 음식 가운데 가장 눈에 잘 띄는 음식은 아닐 수 있다. 접시 한가운데를 차지하지 않고 밥상 한쪽에 작은 양으로 놓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드는 과정을 들여다보면 결코 단순하지 않다. 단단한 말콩을 오랫동안 삶고, 얻어낸 액체를 발효한 다음, 계속 저어가며 다시 졸여야 한다. 그렇게 들인 시간은 짙은 갈색 페이스트 안에 농축된다.
먹을 때는 반대다. 양파와 섞거나 밥에 조금 보태면 된다. 만드는 데 든 시간은 길지만 사용하는 방법은 짧다. 폰 예 지가 미얀마의 일상적인 조미료로 남을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이 차이에 있다.
참고 자료
- Moe Moe Aye 외, Study on Characteristics of Processed Poonyigyi from Horse Gram Beans
- Journal of Ethnic Foods, Fermented Foods of Southeast Asia Other Than Soybean or Seafood Based Ones
- Marukome, Pon Ye Gyi: Myanmar’s Fermented Bean Paste Tradition
- Myanmar International TV, Cottage Industry: Fermented Bean Paste from Bag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