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바고옹은 왜 지역마다 맛과 모습이 다를까

필리핀 바고옹은 생선이나 작은 새우를 소금에 발효시켜 만든 음식이다. 바고옹 알라망과 바고옹 이스다의 차이와 지역별 쓰임은 어떨까? 바고옹은 단순한 새우 페이스트가 아니다. 섬과 지역에서 잡히는 해산물에 따라 재료와 질감, 먹는 방법까지 달라진다. 본문에서 자세하게 알아보자.

바고옹을 새우로 만든 젓갈이라고 소개하는 글이 많다. 틀린 설명은 아니지만 바고옹 전체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필리핀에서는 작은 새우로 만든 것뿐만 아니라 멸치와 정어리 같은 생선으로 만든 발효 음식도 바고옹이라고 부른다.

색깔도 하나로 정해져 있지 않다. 붉은빛이나 분홍빛을 띠는 제품이 있는가 하면 짙은 갈색에 가까운 것도 있다. 곱게 갈린 페이스트처럼 보이는 바고옹도 있고, 생선의 형태가 어느 정도 남아 있는 것도 있다.

같은 이름을 사용하지만 재료와 만드는 지역에 따라 서로 다른 음식에 가까운 셈이다.

필리핀 두마게테 시장에서 판매되는 새우 바고옹

출처: D. Pinpin, Wikimedia Commons

라이선스: CC BY 2.0

바고옹은 한 가지 페이스트가 아니다

바고옹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작은 새우나 크릴을 소금에 절여 만드는 것은 바고옹 알라망이다. 우리가 사진이나 필리핀 식료품점에서 자주 보는 붉은색 페이스트가 대부분 이 종류다.

생선을 사용한 것은 바고옹 이스다라고 부른다. 멸치와 정어리, 청어처럼 크기가 작은 생선이 주로 쓰이지만 지역에 따라 사용하는 어종이 달라진다. 조개나 굴 같은 해산물을 이용해 만드는 바고옹도 있다.

재료가 다양한 이유는 필리핀의 지리와 관련이 있다. 필리핀은 수많은 섬으로 이루어져 있고, 지역마다 쉽게 잡히는 생선과 해산물이 다르다. 한곳의 표준 제조법이 전국으로 퍼졌다기보다 각 지역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소금에 저장하면서 여러 종류의 바고옹이 생겨났다.

바고옹이라는 한 단어 안에 서로 다른 해산물과 지역의 입맛이 함께 들어 있는 것이다.

생선과 새우에 소금을 섞는 이유

더운 지역에서 생선과 새우는 오래 두기 어렵다. 특히 어획량이 많은 시기에는 잡은 해산물을 모두 신선한 상태로 먹거나 판매할 수 없다.

바고옹을 만드는 기본 과정은 복잡하지 않다. 생선이나 작은 새우를 깨끗하게 씻고 물기를 뺀 다음 소금과 섞는다. 이것을 항아리나 용기에 담아 수개월 동안 발효시킨다.

간단해 보이지만 소금의 양과 발효 기간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소금이 너무 적으면 보관하기 어렵고, 지나치게 많으면 발효가 느려지거나 맛이 거칠어질 수 있다. 생산자는 색과 냄새, 질감의 변화를 살펴보면서 완성 시기를 판단한다.

발효가 진행되면 생선과 새우의 살이 점차 부드러워진다. 내부의 효소와 미생물 작용으로 단백질이 작은 성분으로 나뉘면서 짠맛만으로는 만들 수 없는 깊은 맛과 향이 생긴다.

그래서 바고옹은 단순히 소금에 절인 생선과도 다르다. 강한 향은 재료가 상해서 생긴 냄새가 아니라 소금 속에서 오랜 시간 숙성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지역에 따라 질감이 달라진다

전통적인 필리핀 발효 식품을 조사한 자료를 보면 타갈로그 지역에서는 바고옹을 충분히 발효한 뒤 곱게 가는 경우가 많다. 일로코스와 팡가시난에서는 생선을 완전히 발효하기도 하고, 형태가 남아 있을 정도로만 발효하기도 한다.

비사야와 민다나오 일부 지역의 바고옹은 액체가 적고 생선살이 비교적 단단하게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비사야 지역에서는 바고옹을 기나모스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지역마다 선호하는 소금의 양과 숙성 기간도 다르다. 같은 종류의 생선을 사용해도 어떤 곳에서는 걸쭉한 소스를 만들고, 다른 곳에서는 밥에 올려 먹을 수 있을 정도로 건조한 바고옹을 만든다.

제품 색깔이 붉다고 해서 모두 새우 본래의 색인 것도 아니다. 일부 바고옹 알라망에는 붉은 누룩쌀로 만든 색소를 넣는다. 마늘과 양파, 설탕을 넣고 볶은 제품은 생바고옹보다 색이 진하고 맛도 부드럽다.

처음 바고옹을 구입한다면 생선으로 만든 제품인지 새우로 만든 제품인지 먼저 확인하는 것이 좋다. 볶아서 바로 먹는 제품과 요리에 넣어 익혀 먹는 제품도 구분해야 한다.

한 항아리에서 바고옹과 파티스가 나온다

생선 바고옹이 발효되는 동안 용기 위쪽에는 맑은 갈색 액체가 고인다. 이 액체를 따라내고 걸러 만든 것이 필리핀의 생선 소스인 파티스다.

바고옹과 파티스는 서로 전혀 다른 재료로 만드는 조미료가 아니다. 같은 생선과 소금에서 시작해 고형분을 남기면 바고옹이 되고, 충분히 발효된 액체를 걸러내면 파티스가 된다.

다만 사용하는 방식은 다르다. 파티스는 국이나 볶음 요리에 조금씩 넣어 간을 맞추기 편하다. 바고옹은 질감이 남아 있어 채소나 과일에 곁들이거나 요리 재료로 직접 사용할 수 있다.

풋망고 옆에 바고옹이 놓이는 이유

필리핀에서 바고옹을 가장 간단하게 먹는 방법은 풋망고에 곁들이는 것이다. 잘 익지 않은 망고는 단맛보다 신맛이 강하다. 여기에 짭짤한 바고옹 알라망을 조금 올리면 신맛과 짠맛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다.

바고옹을 마늘과 양파에 볶고 설탕이나 고추를 넣기도 한다. 이렇게 만든 바고옹은 생바고옹보다 향이 부드럽고 단맛이 있어 풋망고나 토마토와 잘 어울린다.

풋망고에 바고옹 알라망과 고추를 곁들인 모습

출처: Elmer Centeno Guevarra, Wikimedia Commons

라이선스: CC BY-SA 4.0

바고옹은 카레카레와도 함께 나온다. 카레카레는 땅콩을 사용해 만든 부드러운 소스의 고기 요리다. 음식 자체의 간을 강하게 하지 않고 바고옹을 옆에 놓아 먹는 사람이 원하는 만큼 곁들인다.

채소를 끓여 만드는 피낙벳에는 생선 바고옹을 넣는 경우가 많다. 돼지고기를 바고옹과 함께 볶거나 조린 비나고옹안도 있다. 바고옹이 찍어 먹는 소스에 머물지 않고 냄비 안에서 요리의 맛을 결정하기도 하는 것이다.

작은 숟가락으로 음식의 간을 바꾸다

바고옹은 소금기가 강하기 때문에 많은 양을 넣을 필요가 없다. 작은 숟가락 하나로 채소 요리의 간이 달라지고, 담백한 밥이나 고기의 맛이 또렷해진다.

바고옹이 필리핀 식탁에 오래 남은 이유도 이 쓰임에 있다. 해산물을 오래 보관할 수 있으면서 별도의 육수 없이 음식에 짠맛과 감칠맛을 더할 수 있었다. 때로는 채소와 밥에 곁들이는 반찬이 되기도 했다.

오늘날에는 병에 담긴 볶음 바고옹을 쉽게 구입할 수 있지만 지역 시장에서는 여전히 여러 색과 질감의 바고옹을 볼 수 있다. 새우로 만들었는지 생선으로 만들었는지, 얼마나 발효했는지에 따라 맛이 다르기 때문이다.

바고옹을 새우 페이스트 한 종류로 생각하면 필리핀 음식에서 맡은 역할을 놓치기 쉽다. 바고옹은 각 지역에서 잡히는 해산물을 저장한 결과이면서, 망고 옆 작은 접시부터 채소와 고기를 끓이는 냄비까지 두루 사용되는 일상적인 음식이다.

참고한 자료

캄보디아 프라혹, 한철의 물고기를 다음 계절까지 먹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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