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주레크, 호밀 발효종으로 끓이는 새콤한 수프

폴란드의 주레크를 처음 보면 크림을 넣은 소시지 수프처럼 보인다. 옅은 회백색 국물에 삶은 달걀과 흰 소시지가 담겨 있고, 감자나 베이컨이 곁들여지기도 한다. 그런데 한 숟가락 떠먹으면 예상하지 못한 산미가 먼저 느껴진다.

이 신맛은 식초나 레몬즙으로 급하게 더한 것이 아니다. 호밀가루와 물을 며칠 동안 발효해 만든 자크바스에서 나온다. 주레크를 끓이는 날보다 먼저 발효종을 준비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발효종을 빵이 아닌 국물에 사용한다는 점은 주레크를 다른 수프와 구분한다. 폴란드 사람들에게는 평범한 끼니이면서도 부활절 식탁을 떠올리게 하는 음식이다.

신맛은 수프 냄비보다 먼저 만들어진다

주레크의 시작은 완성된 국물이 아니라 자크바스라고 부르는 호밀 발효종이다. 호밀가루와 물을 섞어 며칠 동안 두면 처음에는 밀가루 냄새만 나던 혼합물에서 기포와 새콤한 향이 나타난다.

폴란드 농업농촌개발부에 등록된 전통 조리 기록에는 호밀가루와 식힌 물을 돌그릇이나 유리병에 담아 실온에서 약 5일간 발효하는 방법이 소개되어 있다. 충분히 시어진 발효액은 고기나 채소로 끓인 국물과 합쳐 수프의 바탕으로 사용한다.

가정에 따라 마늘과 향신료를 넣거나 호밀빵 조각을 함께 담기도 한다. 재료의 비율과 발효 기간도 일정하지 않다. 같은 주레크라도 집마다 산미와 향이 조금씩 다른 것은 완성된 수프에 무엇을 넣었는지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보다 먼저 만들어진 자크바스부터 차이가 생긴다.

호밀가루와 물에서 일어나는 변화

호밀가루와 물을 섞어 두면 원료와 주변 환경에서 들어온 여러 미생물이 활동하기 시작한다. 그중 유산균은 곡물에 들어 있는 당을 이용하면서 유기산을 만들고, 발효종의 산도를 낮춘다. 효모도 함께 자라며 기포와 향을 형성한다.

다만 모든 자크바스에 똑같은 미생물이 들어 있는 것은 아니다. 호밀의 상태와 물의 양, 온도, 발효 시간, 용기 관리에 따라 미생물 구성이 달라질 수 있다. 호밀 발효종 연구에서도 온도와 반복해서 발효종을 이어가는 방법에 따라 우세한 유산균과 효모가 달라지는 모습이 확인됐다.

집에서 발효 상태를 판단할 때는 달력만 보는 것보다 변화의 흐름을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기포가 생기고 날가루 냄새가 줄면서 깨끗한 산미가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인 변화다. 반대로 색이 비정상적으로 변하거나 곰팡이가 보인다면 사용하지 않는 편이 안전하다.

빵 발효종과 닮았지만 맡은 일은 다르다

자크바스는 호밀가루와 물을 발효한다는 점에서 사워도우 발효종과 닮았다. 유산균과 효모가 함께 활동한다는 점도 비슷하다. 하지만 주레크에서는 반죽을 부풀리는 능력보다 산미와 곡물 풍미가 더 중요하다.

빵에서는 발효 과정에서 생긴 기체를 반죽이 붙잡아야 한다. 주레크에는 그런 구조가 필요하지 않다. 발효된 호밀가루가 국물에 풀리면서 신맛을 더하고, 미세한 곡물 성분은 수프의 농도를 높인다.

그래서 자크바스는 단순한 신맛 조미료라고 보기 어렵다. 산미와 향, 질감을 한꺼번에 가져오는 수프 재료에 가깝다. 식초를 넣었을 때와 다른 부드러운 신맛이 나타나는 것도 발효 과정에서 여러 성분이 함께 변했기 때문이다.

자크바스가 국물과 만나는 순간

주레크를 끓일 때는 먼저 고기나 채소로 국물을 마련하고 자크바스를 더한다. 흰 소시지와 훈연 고기, 베이컨, 감자, 마늘, 마저럼 등이 자주 사용되지만 모든 재료가 반드시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발효종이 들어가면 맑았던 국물의 색이 흐려지고 농도가 조금씩 진해진다. 호밀의 구수한 맛과 발효에서 생긴 산미가 육수의 기름진 맛을 눌러 주면서 수프의 균형이 잡힌다. 마지막에는 삶은 달걀이나 서양고추냉이를 곁들이기도 한다.

고기가 풍부한 주레크가 있는가 하면 감자와 곡물 맛이 더 두드러지는 소박한 형태도 있다. 자크바스가 공통된 바탕을 만들고, 그 위에 지역과 가정의 재료가 더해지는 구조다.

호밀 발효종으로 끓인 폴란드 주레크

완성된 주레크는 옅고 탁한 국물에 고기와 감자, 달걀 등을 곁들여 먹는다. 어떤 재료를 넣느냐에 따라 국물의 색과 농도도 달라진다.

사진: Radosław Drożdżewski / CC BY-SA 4.0

주르와 주레크, 흰 보르시치 사이

폴란드에서는 주르와 주레크라는 이름이 함께 사용된다. 주레크를 주르의 작고 부드러운 형태를 가리키는 말로 설명하기도 하지만, 실제 식탁에서는 지역과 가정에 따라 두 이름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다.

흰 보르시치와의 구분도 마찬가지다. 호밀 발효종을 사용한 수프를 주레크, 밀 발효종을 사용한 수프를 흰 보르시치라고 나누는 설명이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오래된 지역 조리법을 살펴보면 이름과 재료가 항상 이 기준에 맞게 정리되지는 않는다.

폴란드 농업농촌개발부의 전통식품 목록에도 소시지를 넣은 주르, 크라쿠프식 주레크, 쿠야비식 주르처럼 서로 다른 형태가 등록되어 있다. 하나의 표준 조리법보다 지역별 변형이 함께 이어져 온 음식으로 보는 편이 자연스럽다.

검소한 끼니에서 부활절 식탁까지

오늘날 주레크는 흰 소시지와 달걀이 들어간 부활절 음식으로 잘 알려져 있다. 폴란드 정부가 소개한 부활절 식문화에서도 주레크는 흰 소시지와 서양고추냉이, 달걀을 곁들이는 대표적인 수프로 설명된다.

하지만 주레크가 처음부터 풍성한 축일 음식이었던 것은 아니다. 호밀가루와 물로 만든 발효종은 값비싼 재료가 없어도 수프에 맛과 농도를 더할 수 있었다. 폴란드의 지역 기록에는 주르가 일상적으로 자주 먹던 음식이었으며, 종교적인 금식 기간과도 밀접하게 연결됐다는 내용이 남아 있다.

검소한 주르를 계속 먹던 금식 기간이 끝나면 고기와 달걀을 넣은 주레크가 부활절 식탁에 올랐다. 같은 호밀 발효 수프가 평소에는 간단한 끼니가 되고, 축일에는 풍성한 음식으로 달라진 셈이다.

빵 그릇에 담긴 폴란드 전통 수프 주레크

빵의 속을 비워 그릇처럼 사용한 주레크다. 빵 그릇에 담는 모습이 널리 알려져 있지만, 가정에서는 일반적인 수프 그릇에 담아 먹는 경우도 많다.

사진: MOs810 / CC BY-SA 3.0

발효종과 완성된 수프는 구분해야 한다

자크바스는 살아 있는 미생물이 활동한 발효종이지만, 완성된 주레크는 국물과 함께 끓이는 음식이다. 따라서 주레크를 요구르트나 생김치처럼 살아 있는 유산균을 그대로 섭취하는 식품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주레크에서 발효가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조리 전에 맛의 바탕을 만드는 것이다. 유산균과 효모가 호밀 혼합물의 산도와 향을 바꾸고, 그 발효종이 수프에 들어가 고유한 신맛과 질감을 남긴다.

발효종을 직접 만들 때는 깨끗한 용기와 물을 사용하고 상태를 살펴야 한다. 시큼한 냄새가 난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발효가 안전한 것은 아니다. 처음 접한다면 제조 과정과 보관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시판 자크바스를 이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주레크의 맛은 기다린 시간에서 시작된다

주레크 한 그릇을 보면 소시지와 달걀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이 수프의 성격을 결정하는 재료는 며칠 전부터 호밀가루와 물이 담겨 있던 발효 용기 안에서 만들어진다.

호밀 발효종의 산미는 육수의 기름진 맛을 정리하고, 곡물 성분은 국물에 부드러운 농도를 더한다. 같은 발효종도 지역과 가정의 조리법을 만나 서로 다른 주레크가 된다.

평범한 호밀가루를 며칠 기다린 뒤 국물에 풀어 먹는 방식은 빵 중심의 발효 문화와도 닮아 있다. 다만 폴란드에서는 그 발효종이 빵에 머물지 않고 따뜻한 수프 한 그릇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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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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